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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낸후에
작성자 박춘식 등록일 2019-07-27 23:08:32 조회수 109

*아래글은 막내동생 새터교회 박흥식집사의 글인데 우리 7남매 모두의 마음입니다.*

1929년에 시작된 나의 어머니 조덕현권사의 길고 긴 여정의 끝은 아o름o다o움 이었습니다.
91년의 삶가운데 90년의 건강한 삶+ 요양원생활 약 8개월+ 병원입원 일주일미만+ 응급실 12시간+ 일반병동(임종준비시간)15시간 & 소천 =약 90년 9개월
너무도 급작스럽게 무너져버린 어머니의 건강을 보며 세월앞에서는 그 누구도 견디거나 버틸수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사망진단서에 사인이 병사로, 질환이 폐렴에 패혈증이라쓰여 있지만 폐렴에 걸려 고통받는 환자처럼 기침과 가래를 쏟아 놓는 모습을 볼 수 없었으며 괴로움에 몸을 뒤트는 모습 또한 보여주지 않으신 어머니셨습니다.
죽음의 침상에 누우신 어머니와 밤을 함께 지새우며 거친 호흡과 숨결을 보았지만 그는 죽음앞에서도 너무 당당하셨고 마치 당신의 숨을 조절해 가시며 시간과 상황을 지배하시며 그 끝을 맺기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소나타를 연주하시는 듯 하셨습니다.
이젠 이 땅에서 뵐 수가없고  그 기도소리를 들을수가 없지만 우리 자녀된 자들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바라 보시면서 안타까워하시는 일이 결코 없도록 이땅에서 올 곧고 진정으로 바른 삶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가신지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보고싶습니다.

어 머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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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날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님이 외출허가를 받으시고 나오셔서 휠체어를 타신 채 생애 마지막 만두를 빚어 주셨다.

목사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이 부모에게 언제나 부족한것 뿐이다.
처가가 멀다는 핑게로 명절에 처가에 가서 지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설날이 되어도 세뱃돈 한번 통크게 드려본적이 없다. 그래도 늘 마음에 뿌듯한 것은 결혼하고 아내가 첫번째 맞는 시 아버지 생일에 장손 (박신웅목사)을 낳았다는 것이다.
형님이 딸만 셋 이었는데 손자를 낳을때 부모님이 많이 기뻐하셨다 (그 시대 부모들이 거의 그랬음을 이해해 주시길) 아버님 소천후 홀로되신 어머니가 우리교회 집사 집에 세들어 사셨는데 산골이라 시장가시는 일이 불편해 늘 필요한 것을 부탁하거나 우리가 장볼때 공급해 드리다가 어머님이 굳이 며느리보다는  사모에게 짐이 안 되시려고 같이 살기를 거부하셔서 아내 이름으로 신포천 아파트 비록 작은 평수의 아파트지만 대출과 어느 권사님의 도움으로 구해서 입주해 드렸는데 아파트 생활을 참 기뻐하시며 이웃의 홀로된 교인을 불러다 수시로 식사의 교제를 나누시곤 했다  아파트 단지내의 25시 편의점과 가끔 열리는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손주들을 수시로 불러 먹이시곤 했다.  큰 딸이 매일 새벽 할머니를 모셔와 1년 내내  새벽예배 한번 빠지지 않는 분이셨다.
요양원에 가셔서도 매주 휠체어를 타신채  둘째딸 사위 곽경호 안수집사가  모셔와 예배를드리고 모셔다 드리곤 했다.
요양원에 계신 몇달 동안 세딸  과 며느리 아들들이 수시로 문병가서 요양원 직원들에게 눈치를 볼정도였으나 우리 막내가 시설장으로 있는 요양원인지라 당당하게 다닐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이 수시로 요양원 선생들에게 선물 간식을 베풀어 인기가 좋았다.고마움의 표시로 떡을 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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